[김태호 칼럼] 다른 움직임, 같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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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칼럼] 다른 움직임, 같은 가치
  • 김태호
  • 승인 2020.06.2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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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동주〉

영화 〈동주〉는 비슷한 분량을 할애하여 두 주인공의 행보를 추적한다. 동주(강하늘)와 몽규(박정민)은 동갑내기 죽마고우로서 같이 나고 자란 친척으로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영화에서 둘이 마주하여 대화하는 투 숏을 찾아볼 수 없다. 둘만의 독대를 촬영하는 숏에서 서로의 시선이 어긋난 옆모습만 볼 수 있거나 오버더숄더 촬영으로 한 명의 뒷모습만 포착된다.

동주와 몽규의 대사를 빌려 표현하자면 동주는 현실참여에 비교적 소극적인 문인과 서정시를, 몽규는 현실참여에 능동적인 지식인과 이데올로기 산문(혹은 물리적 행동)을 상징한다. 영화에서 동주는 책을 읽고 공부하고 글을 쓰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반면에 몽규는 글을 쓰는 모습 없이 계획을 짜고 사람을 모으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 활동을 하는 실천인으로서의 면모가 나타난다.

▲영화 〈동주〉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동주〉 (사진=네이버 영화)

앞서 언급한 동주-몽규의 대면 쇼트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두 캐릭터가 상징하는 바는 각기 다른 가치를 지향한다. 둘은 같이 밥을 먹고, 기차를 타고, 시험을 보는 일상을 공유하더라도 영화의 큰 물음인 ‘당신은 이 암울한 시대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각자의 신념으로 행동한다.

일례로 영화 첫 시퀀스에서 동주는 방안에서 신앙교육의 장단점을 고민하는 동안 몽규는 이미 마루에서 뛰쳐나갈 준비를 한다. 방 문턱으로 나뉜 두 인물의 프레임은 동주와 몽규가 영화에서 다른 운동성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 중반, 교련수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동주는 강의실에서 머리카락이 잘린다. 긴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은 소극적인 문인의 죽음(탈피)을 상징한다. 이후 동주는 교토의 몽규에게 찾아가 자신도 독립운동에 동참하고자 의사를 전달하지만 몽규는 완곡히 거절한다.

이는 동주의 나약한 면모를 우려한 배제가 아닌 서정문학이 나름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게끔 지키려는 몽규의 배려다. “너는 시를 써라”라는 몽규의 말은 동주가 갈피를 잃지 않도록 힘을 북돋워 주는 응원의 메시지다.

극 후반 두 주인공은 후쿠오카 수용소에 수감된다. 이때, 영화는 둘의 신문(訊問) 쇼트를 교직으로 배열한다. 동주와 몽규는 짧게 밀린 머리에 수감복을 입고 동일한 탁상, 동일한 경찰 앞에서 앉아있다.

▲영화 〈동주〉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동주〉 (사진=네이버 영화)

교차하는 둘의 신문 장면은 역시나 같은 프레임으로 구성되고 같은 미장센을 가진다. 동일한 위치에서 동일한 크기로 묘사되는 동주와 몽규의 모습은 결국 둘이 같은 목적을 향해 움직였음을 밝힌다. 동주로 표상된 서정시와 몽규로 상징화된 물리적 움직임 모두 독립을 위한 노력이었다.

영화 〈동주〉는 동주와 몽규에게 비슷한 양의 쇼트를 할애하면서도 대면 프레임을 구축하지 않아 무조건적인 협력을 강요하지 않는다. 마주하는 시선과 대화의 부재는 곧 서로의 한계를 지적하거나 교정하려는 시도를 차단한다.

영화는 어느 한쪽이 ‘더 좋은 방법이다’라는 가치 매기기는 지양하는 대신, 두 캐릭터 고유의 영역을 존중한다. ‘당신은 이 암울한 시대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각자의 응분한 능력으로 답하는 두 청년의 움직임은 결코 서수를 매길 수 없다. 그들은 같은 층위의 고귀함을 지닌다.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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