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영 칼럼] 예술적 리얼리티에 대한 고찰
상태바
[장창영 칼럼] 예술적 리얼리티에 대한 고찰
  • 장창영
  • 승인 2020.07.07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얼리티를 파괴한다고 여기는 것은 곧 리얼리티를 지키는 것

우리는 영화나 미술을 비롯한 예술 작품을 볼 때, 종종 ‘리얼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리얼한 예술, 즉 ‘예술적 리얼리티’란 무엇일까?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다른 감각보다 시각에 높은 비중을 두고, 세상을 보고 대상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판단의 일종인 ‘리얼하다’ 역시 우리가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촉발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Hyperrealistic Oil Paintings of Feminine Beauty by Anna Halldin Maule (사진 출처=artfido)
▲Hyperrealistic Oil Paintings of Feminine Beauty by Anna Halldin Maule (사진 출처=artfido)

그리하여 우리는 하이퍼리얼리즘 사조의 트롱프뢰유(tromp l’oeil)한 작품을 리얼하다고 표현하고, 인상주의 혹은 입체주의 사조의 작품은 리얼하지 않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전자는 구체적이지만 후자는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어떠한 느낌은 들지만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모르겠고, 설명을 보거나 들어도 난해하다고 여긴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자연에 대한 광학적 투사에 매력을 느끼기에, 그림과 그 속에 담긴 세계는 우리가 실제로 보는 자연과 같아야 ‘리얼하다’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화가들은 왜 리얼리티로부터 멀어지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가? 그리고 그들은 선의로 리얼리티를 만들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악의로 리얼리티를 만들지 않는 것인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리얼리티’의 정의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리얼리티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실존’은 두 가지 형태, 보이는 실존과 보이지 않는 실존으로 구성된다. 즉 광학적 투사는 보이는 실존이고, 이는 리얼리티의 한 단면일 뿐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作 '조지 다이어에 대한 세 개의 습작'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프랜시스 베이컨 作 '조지 다이어에 대한 세 개의 습작'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이와 관련해서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미지는 창조자의 신경계에서 나와야 하며, 이미지는 관람자의 신경계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이미지가 시각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신경계로의 이동 혹은 확장을 의미한다. 동시에 예술적 리얼리티 또한 시각 대신 신경에 호소하여, 진정한 실존에 다가가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근대 서양만이 아니라, 과거 동양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회화에 필요한 요소로 우리가 떠올리는 눈과 손에 이어 마음을 꼽았다. 대상을 보는 눈과 대상을 그것을 표현하는 손, 그 사이에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적 리얼리티는 보이는 실존을 넘어서는 진정한 실존에서 나온다고 여겼다. 그리고 진정한 실존에 대한 고찰은 예술을 발전시켰다.

바로 사진이 등장한 것이다. 사진은 기존의 예술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고 쉽게, 보이는 실존을 표현했다. 실제로 사진이 등장한 초창기에 사람들은 사진이 기존의 예술을 대체하고 예술과 예술가를 멸종시킬 것이라 생각했다.

▲요크셔의 풍경을 옮긴 데이비드 호크니의 'woldgate before kilham' (사진 출처=artnet news)
▲요크셔의 풍경을 옮긴 데이비드 호크니의 'woldgate before kilham' (사진 출처=artnet news)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예술은 사진이 표현하는 보이는 실존을 넘어서는 진정한 실존을 발견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예술은 사진보다 리얼리티에 더 가까워졌다. 이와 관련해서 데이비드 호크니는 “사람들은 세계가 사진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진은 기하학적으로 대상을 보지만, 우리는 대상을 기하학적, 심리적, 주관적으로 본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사진은 세계로부터 빗나간다”라고 말했다.

즉 사진은 기하학적인 리얼리티를 구현함에 그쳤지만, 예술은 기하학적, 심리적, 주관적인 리얼리티를 구현했고, 이는 곧 예술의 경쟁력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리얼리티를 표현하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기하학적인 진실이 높다면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빛의 잔상을 담고자 하면 인상주의로 귀결되는 것이다. 리얼리티를 포착하려는 이러한 노력이, 예술을 진화시켰고 살아남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리얼리티를 파괴한다고 여기는 것은, 곧 리얼리티를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는 리얼리티를 파괴하는 파괴자가 아니라, 저만의 방식으로 리얼리티를 만들어내는 창조자다.

장창영
장창영 다른기사 보기

소셜워치 칼럼니스트 1기 (대외활동)


관련기사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