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아 칼럼] 거짓된 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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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아 칼럼] 거짓된 포만
  • 임윤아
  • 승인 2020.07.0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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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포만은 거짓이 아닌 결백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 거짓말 하나로 누군가의 심장을 하루아침에 터트릴 수가 있다. 거짓의 시작이 설령 자격지심·자기방어·자기포장에서 왔다 할지라도 거짓이 누군가의 삶을 파멸로 향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가벼운 거짓 하나가 생을 베어버릴 무기가 될 수 있다.

여기 거짓을 통해 자기자신을 증명받고자 한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단 한순간도 그들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며 사랑하지 못했다. 그 대신 그들은 거짓을 사랑하기로 했다. 사소한 거짓말이 나아가 진실이 되고 당연한 것으로 정의내리기 전까지, 거짓은 아주 작은 균열이었다. 하지만 미세한 실금 하나가 본체를 완전히 산산조각낼 수 있음을 그들은 정녕 시작부터 예상하지 못했을까?

영화 〈크랙〉은 선망받는 교사의 이야기다. 동경의 대상으로서 자신만의 권위에서 아름다운 위상을 누렸다. 그러다 한 여학생이 전학오게 된다. 제 이상적인 삶을 이미 누리고 있는 여학생 하나가. 피아마라는 여학생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교사는 점차 자신의 세계를 미묘하게 왜곡시키기 시작한다.

▲영화 〈크랙〉 스틸컷 (사진=DB)
▲영화 〈크랙〉 스틸컷 (사진=DB)

피아마를 향한 감정의 시작은 단순 시기질투 혹은 자기연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교사는 점차 피아마의 숨을 자신의 숨으로 인지한다. 자기세뇌는 곧 부서질 거짓으로 자리하게 된다.

누군가의 인생을 완벽하게 훔치는 것은 불가하다. 처음부터 내 것인 것처럼 꾸미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거짓 하나로 인해 안정적이던 삶은 모조리 날아가버렸다. 교사는 어쩌면 애초부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인물을 파괴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기파괴적인 선택은 처음부터 예견된 파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짓의 발현은 바로 ‘완벽함’에서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교사인 그녀는 그녀 자신이 망가져 있기에 상대방은 단 한순간도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완벽함이 자기 자신에게 덧대어지기를 갈망했을 것이다.

그녀가 지닌 거짓의 원천이 갈망이었다면, 이와 다른 결의 거짓을 말하는 영화가 있다. 알랭 드롱이 주연을 맡은 〈태양은 가득히〉의 경우 거짓이라는 소재를 현실감 있게 다뤘다. 수십년이 흐른 시점에서도 회자되는 수작이니만큼 거짓이라는 키워드를 잘 다루었다.

한 남자가 제 자신이 갖지 못한 부를 남에게서 빼앗아 입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기까지의 과정이 잘 드러난다. 이때 관객은 눈치챈다. 누군가의 삶에 스며드는 행위는 완벽하게 자기자신을 속이기 위한 일시적 수단일 뿐이다. 어디에서나 거짓된 삶은 환영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 스틸컷 (사진=DB)
▲영화 〈태양은 가득히〉 스틸컷 (사진=DB)

거짓이 진실로서 인정받기를 바라는 건 모순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통째로 빼앗아 자신의 인생인 것처럼 빌려간 캐릭터는 이윽고 국내 영화 〈화차〉에서도 발견된다. 사랑하는 제 연인이 알고 보니 다 거짓이었다는 시작, 제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어온 정보는 완전히 타인의 것이었다는 결말. 위 세 가지의 영화는 결국 거짓말이 파멸로 향하는 화차(火車)임을 증명한다.

각자 책임져야하는 자신만의 운명의 수레바퀴가 있는데, 이곳에 거짓을 태우는 순간 바로 불타는 열차가 되어버린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거짓의 정반대 지점에 진실이 있는지. 거짓의 반대편에는 믿음, 사랑, 부와 명예라는 무게가 앉아있지 않은가. 그들은 결국 제 진짜의 삶에서 벗어나 거짓되더라도 조금이나마 빛나는 삶을 가지고자 했던 것이다. 저마다의 이유로서 거짓에 거짓을 엮었고 끝내 자기자신에게 독이 되는 결말로 마감했다.

▲영화 〈화차〉 스틸컷 (사진=DB)
▲영화 〈화차〉 스틸컷 (사진=DB)

거짓만큼이나 완벽이라는 개념 역시 모순이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완전해보이더라도 아주 미세하게 저마다의 실금이 존재한다. 우리 각자가 타고 있는 열차는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망원경을 쥐고 있다. 매순간 나타나는 열등감 따위는 스스로 절제해야만 하는 부분인 셈이다.

거짓말은 주어진 제 삶에서 벗어나 오로지 완벽한 타인으로부터 의존하고픈 의존증에서부터 비롯되었을 수도 있겠다.

사랑이 어디에 있냐고 울부짖은 영화 〈클로저〉 클로저 역시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사랑이라는 말 역시 실체없는 허울이지 않은가. 상대방을 완전히 가졌다 소유했다라는 믿음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보여주며 사랑 위에 낀 거품을 조용히 걷어낸다.

거짓은 잠깐의 포만이었다. 일정 시간 지나고 나면 다시 허기가 지기 마련이다. 갈증과 함께 동반된 이 허기는 개개인이 견뎌내야만 하는 각자의 고통이지 거짓은 결코 완전한 포만이 될 수 없다. 완전한 포만은 거짓이 아닌 결백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거품 낀 포만은 결코 제대로 된 포만이 아니다. 영화 내에서나 밖에서나 거짓은 언제나 완벽할 수 없어 괴로운 빈 수레였다.

임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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