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칼럼] 디테일은 있는데 악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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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칼럼] 디테일은 있는데 악마는 없다
  • 김태호
  • 승인 2020.07.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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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와 인스타그램에 떠도는 사진이 있다. ‘픽사의 디테일’이란 제목으로 유통되는 사진은 유명 영화 유튜버의 한 영상을 정리한 것이다.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시리즈, 〈월-E〉, 〈업〉 등에 숨겨진 디테일을 밝힌 해당 영상은 누적 조회수 120만을 기록했고, 현재도 그 내용이 각종 커뮤니티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픽사 스튜디오는 3D 애니메이션 제작 선구자로서 오랜 기간 관객들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1995년 〈토이 스토리〉부터 2019년 〈토이 스토리4〉까지 픽사 장편 목록을 촘촘히 채우는 수작과 명작들은 제목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 충분하다.

▲픽사 스튜디오의 캐릭터들 (사진=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제공)
▲픽사 스튜디오의 캐릭터들 (사진=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제공)

픽사가 이토록 3D 애니메이션에 강자인 이유는 탁월한 CG 기술력과 특유의 매력 넘치는 캐릭터뿐만 디테일에도 신경 쓰기 때문이다. 세심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모였을 때 작품의 완성도는 높아지고 관객이 느낄 재미와 감동은 증폭된다. 아마 ‘픽사의 디테일‘이 계속 주목 받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매번 픽사의 모든 작품이 명작 반열에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론부터 성급히 말하자면 신작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은 범작 수준에 그친다. 감탄을 자아내는 CG 표현력과 영화 곳곳에 배어있는 자잘한 디테일은 ‘역시 픽사구나’의 반응을 끌어내기엔 모자람이 없지만,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는 아쉬울 따름이다.

영화의 호평 요소부터 언급해보자. 〈온워드〉는 오프닝에서부터 픽사가 3D 표현의 최강자임을 각인시킨다. 수풀, 물, 마법 불꽃과 같은 물질 표현과 인물들 옷을 비롯한 재질 구현은 놀랍도록 선명하다. 더불어 광원의 변화에 따른 명암 표현 역시 탁월했다. 추정 제작비가 약 2억 달러라는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기술력은 일반인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영화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스틸컷 (사진=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제공)
영화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스틸컷 (사진=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제공)

디테일 수준도 높았다. 이번 작품은 두 주인공의 성격을 시각화하기 위한 여러 요소가 돋보였다. 이안(톰 홀랜드)의 너드스러움은 정리 안 된 곱슬머리와 목 단추만 겨우 풀어놓은 체크무늬 셔츠로 보여진다. 발리(크리스 프랫)의 투박한 성격은 그의 차에 덕지덕지 붙여진 덕테이프와 바람 빠진 타이어로 표현된다.

아쉬운 점은 CG 기술과 디테일 표현만 인상적이지 캐릭터와 스토리는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픽사는 그간 개성이 뚜렷하고 장난기 가득한 주인공을 내세워 독특한 세계를 모험하는 영화를 선보여왔다. 영화 속 캐릭터와 모험의 표면은 비현실적일지라도 인물들이 지녔던 내면 동기와 결말의 성취는 관객이 일상에서 느끼는 정서와 흡사했다.

삶의 격랑에 순수함이 마모된 어른들은 픽사의 작품에 열광했다. 어른들은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놓아버린 호기심을, 잊어버린 애정을, 어린 시절 꿈을 복기했다. 관객은 장난감(토이 스토리 시리즈), 청소 로봇(월-E), 주방 쥐(라따뚜이) 따위에도 자신을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 〈월-E〉 스틸컷 (사진=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제공)
영화 〈월-E〉 스틸컷 (사진=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제공)

반면 〈온워드〉에는 참신한 모험이 없다. 극 중 마법을 사용하는 장면이 꽤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기실 가솔린 자동차에 의지한 로드 무비에 가깝다. 애니메이션에서 보기를 바라는 환상 요소가 절감되니 당연히 영화를 향한 몰입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온워드〉에는 캐릭터-스토리 간의 긴밀한 관계성도 없다. 기름이 동나 걸어서 주유소를 찾는 주인공은 굳이 엘프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마법을 잊고 살아가는 엘프’ 설정은 주인공 이안의 성장담을 위한 장치일 뿐, 더 이상의 의미를 생산하지 못한다.

기존 픽사의 명작들은 영화 속 주요 요소들과 그것에서 기인하는 모험이 유기적으로 연결됐으나 〈온워드〉는 서로 박리돼 있다. 영화가 ‘가족애’를 강조하는 방식도 진부하다. ‘아버지의 부재’와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형’인 점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흔한 화법이다.

우리가 픽사에 열광하는 까닭은 첨단 기술과 디테일 표현이 걸출해서만은 아니다. 신선한 설정과 공감을 일으킬 이야기가 선행됐을 때, 비로소 관객은 찬사를 보낸다. 〈온워드〉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은 정점을 갱신한 픽사의 기술력과 세심한 디테일이지, 이야기에서 말미암은 감동이 아니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만 디테일만 있는 곳에 악마는 없다.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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