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환 칼럼] 남성성이란 관념의 연속성과 인식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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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환 칼럼] 남성성이란 관념의 연속성과 인식 변화
  • 박세환 기자
  • 승인 2019.12.0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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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세상에서 남녀의 영역은 구분되고 있다. 가령 남성은 치마를 입지 않는다. 간호사와 같은 직업군에는 여성이 월등히 많다. 이 모든 것을 그저 ‘개인의 선택’ 문제로 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차이들은 생물학적 원인에 따른 필연적인 것인지라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인간을 중성 인간으로 변환시키기 전엔 완전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어찌 됐건 핵심은 여전히 남성 영역과 여성 영역의 구분은 오늘날에도 ‘실존’한다는 것이다.

▲본문과 관련 없는 사진 (출처:Pixabay)
▲본문과 관련 없는 사진 (출처:Pixabay)

누차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페미니스트들의 문제는, 이 구분 속에서 좋은 것은 모두 남자에게로, 나쁜 것만 다 여자에게로 몰렸다고 주장한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필자는 지난 칼럼들을 통해 그 예들을 둘러본 바 있다.

남자의 영역과 여자의 영역이 나누어져 있는데 세상 좋은 건 다 남자에게만 주고 여자가 받은 건 다 나쁜 것들이었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항상 여자만 피해자였다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러한가? 정말 그랬다면 일단 군대부터 여자가 갔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남자가 받은 것들이 여자가 받은 것들보다 좋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자아이들이 기껏해야 쪼그려 뛰기나 할 때 남자라는 이유로 엎드린 상태서 야구방망이로 얻어맞아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유쾌한 설정이 못 된다.

첨언하자면 상대 성별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역시 남자 쪽이 훨씬 어렵다.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입고 남자처럼 행동하며, 남자의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고 여자처럼 행동한다면, 주변으로부터 가해지는 호모(Homosexual) 취급을 각오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많은 경우 남자에겐 ‘선택권’이 없다.

▲본문과 관련 없는 사진 (출처:Pixabay)
▲본문과 관련 없는 사진 (출처:Pixabay)

지금까지 말해 왔던 ‘남자의 피해 서사’들은, 사실 남녀 간에만 첨예한 충돌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다. 세대 간에도 충돌이 일어난다. 이를테면 이 부분에 대한 과거 세대 남성들과 지금 세대 남성들의 관점이 판이하다.

오늘날 종종 언급되는 ‘남성이 피해받는 측면들’은 포스트 민주화 세대(오늘날 20·30세대) 젊은 남성들에게는 널리 통용되지만, 상위 세대의 남성들에겐 쉽게 통용되지 않는다. 이 상위세대의 마초남들은 남성이 약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납득하지 못한다.

대부분 이 관점 변화에 대해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그때랑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필자는 단지 그것만 이유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남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를 넘어서, 지금 젊은 남자들이 ‘남성성’이라는 것에 대해 가지는 관점 자체가 과거 세대 남성들의 관점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좀 더 이야기해 보자.

오늘날 젊은 남성들이 힘들다고 토로하는 남성 문제들은 사실 옛날부터 존재해 왔던 것들이다. 중요한 건 지금 남자들이랑 달리 과거 남자들은 그것에 불만을 제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종종 제기되는 남성 고정관념으로 인한 문제들, 예컨대 항상 먼저 앞에 나서서 피 흘려야 하고, 무언가를 지켜주고, 책임져야 하는 식의 역할들은 과거 남자들에겐 ‘문제’라고 인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기쁨’이기도 했다.

옛날 아저씨들 식사 자리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 중 하나는 서로 자기가 계산을 하겠다고 다투는 것이다.

“이 사람이? 지난번에도 당신이 계산했잖아! 이번에는 내가 내야지! 빨리 지갑 안 집어넣어?”

여기엔 단순한 ‘배려’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카드를 꺼냄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고픈 바람이 바로 그것이다.

위계가 분명한 ‘수컷들’의 자리에선 이것이 사소하지 않은,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간단하게,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함부로 지갑을 여는 행위는 자칫 상위수컷의 권위를 모독하는 무례한 행위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본문과 관련 없는 사진 (출처:public domain pictures)
▲본문과 관련 없는 사진 (출처:public domain pictures)

남성사회 특유의 거친 폭력들 역시 ‘자부심’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경험하며, ‘유약한 여성들’과는 분명 다른 우월한 자신을 느끼게 된다.

과거의 남자들이 폭력, 거침, 그리고 약자에 대한 보호 등 각종 방식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것은, 단순한 의무를 넘어 남자로서의 기쁨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남자들은 다르다. ‘남자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오늘날 젊은 남자들은 그 어떤 메리트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일 뿐이다. 젠더 갈등 때 자주 나오는, “여자는 저거 안 하는데 나는 왜 해야 해?”의 근원이라 하겠다.

옛날에는 연애&결혼 맨토들이 여성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남자의 자존심을 위해 일부러 남자가 하도록 양보하라”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었다. 남자가 공짜로 밥을 얻어먹는 것은 수치라는 관념도 있었다. 물론 오늘날엔 이 모든 것이 그저 철지난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변화양상들은 ‘과거의 남자들’ 입장에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남성성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오늘날의 젊은것들은 그들의 시각에선 그저 기생오라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논쟁의 장에서 종종 페미니스트들을 더욱 유리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남자가 남자로서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만드니 말이다.

이러한 세대 간 인식 변화는 왜 발생했을까? 단순히 지금 시대가 남성들에게 많이 힘들어져서일까?

하지만 역사를 보면 남성이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시절도 많았다. 대규모 전쟁으로 인해 한 나라 한 세대의 남자들이 몰살당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소련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남성성에 대한 남자들의 문제 제기는 이제야 나오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됐건, 필자는 이러한 변화가 절대 잘못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이 ‘여자이기 때문에’ 그저 당연했던 것들에 대해 피해라고 말하기 시작했듯이, 남자들 역시 ‘남자이기 때문에’ 그저 당연해야 했던 것들에 대해 피해라고 말하게 된 것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서로가 터놓고 각자의 입장을 조율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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