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예 칼럼] 학대는 훈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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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예 칼럼] 학대는 훈육이 아니다
  • 박지예
  • 승인 2020.06.1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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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인권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어가는 만큼, 아동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어야

 ‘친권자는 그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 민법 제 915조, ‘친권자 징계권’에 관한 조항이다. 법무부는 1958년 민법이 제정된 이래로 처음, 부모의 자녀 징계권을 인정한 민법 관련 조항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징계라는 단어가 체벌을 허용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는 법제개선위원회의 의견과 최근 들어 연이어 발생하는 아동 학대의 심각성 때문이다.

실제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아동학대로 인한 피해는 2만 4천 건을 넘어섰고 이는 하루 평균 70명에 가까운 아이가 학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중, 부모에 의한 학대가 76~78%로 학교 교사(5%)나 친인척(4.5~4.7%)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DB)
▲(사진=DB)

징계권의 개정이 아닌 삭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얼마 전, 9살 아이가 여행용 가방에 갇혀 사망한 사건과, 온몸에 멍이 들고 프라이팬에 지져져 지문까지 사라진 아이가 탈출한 사건 등 심각한 아동학대 피해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어린 자식을 끔찍하게 확대하는 사건에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지만, 오히려 가해 부모들은 훈육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체벌이었을 뿐 학대가 아니라고 똑같이 입을 모아 주장한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고, 고운 아이 회초리 한 번 더 든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한국은 오래전부터 아이의 훈육을 위해서라면 체벌은 무조건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훈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나이를 먹어도 훈육 당시에 느꼈던 공포감만 선명히 떠오를 뿐, 당시에 본인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체벌을 받았는지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이었다. 그저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한 것이다.

체벌에 대한 아이들의 경험을 묻는 어느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체벌을 받았을 때의 느낌을 단어로 표현해보라는 실험에서 아이들은 대체로 무서움, 상처받음, 슬픔, 끔찍, 비참함 등의 단어들만 선택했다. 미안하거나 반성한다는 단어를 선택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체벌이 교육적으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훈육을 받았던 기간이 길었거나 강도가 센 체벌을 받았던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볼 때, 과연 그들이 받았던 훈육은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훈육이었던 걸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진=DB)
▲(사진=DB)

개인의 인권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어가는 만큼, 아동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식이 올바르게 커주었으면 하는 애정과 바람에서 훈육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훈육하기 전 아이에 대해 갖는 그 순간의 분노가 자신이 충분히 통제 할 수 있는 것인지, 차분하고 냉정하게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만 주의를 줄 수 있는지 본인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훈육은 훈육이 아닌 끔찍한 학대로 이어질 뿐이다. 또한 ‘훈육은 체벌’이라는 생각은 지양돼야 한다. 종종 무조건 회초리를 들고 체벌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훈육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폭력이 당연히 받아야 할 체벌 중 하나라고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시 한 아이를 평생을 공포와 트라우마 속에서 살제 할지도 모른다. 폭력은 결국 또 다른 폭력을 낳게 될 것이다. 사랑의 매는 없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랑과 매는 절대로 같은 선상에 놓일 수가 없다.

박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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