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칼럼] 잘 만들어진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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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칼럼] 잘 만들어진 위로
  • 김태호
  • 승인 2020.06.1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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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국도극장〉

〈국도극장〉의 힐링은 명확하다. 힐링의 메시지도 선명하고 힐링을 받았으면 하는 대상도 확실하다. 굳이 영화를 관람하지 않고 예고편이나 시놉시스 등만 확인하더라도 〈국도극장〉이 경계 위에서 불안정성을 체현하는 청춘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네고 싶어 함을 눈치챌 수 있다. 영화의 영어 제목부터 〈Somewhere in between〉이지 않은가.

그런데 〈국도극장〉의 위로는 무언가 공산품의 성격을 띤다. 그것도 마감이 아주 좋은 공산품. 영화에 감성이 일절 부재하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 〈국도극장〉의 메시지는 방황하는 이들을 충분히 어루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영화의 많은 요소에 공감했고 온화함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메시지의 생산 과정이 기계적일 때, 영화의 위로는 다분히 정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 '국도극장'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국도극장'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국도극장〉이 움직이는 방식은 모범생에 가깝다. 군더더기 숏은 거의 없으며 서사와 인물은 간결하다. 러닝타임도 욕심을 부려 몸집을 불리려 들지 않는다. 전통적인 모험 서사 단계에 맞춰 자신의 삶을 탐색하는 주인공 기태(이동휘)의 이야기는 때마침의 연속이다.

기태가 벌교에 오자 때마침 국도극장 직원 자리가 공석이고 기태의 가족이 모인 중화요리점에 때마침 옛 동창 영은(이상희)이 있다. 기태가 극장과 영은에 정을 붙이고 벌교에 정착하기로 결심하자 때마침 주변인들은 각자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고 기태는 다시 혼자가 된다.

이야기 속 안정과 불안정의 시작점은 적확히 제자리를 찾아 점유한다. 적절을 넘어 공식에 가까운 플롯이 연속되다 보니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보다 ‘인위적’이라는 수사와 잘 어울린다.

카메라의 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도극장〉의 대부분 숏은 고정 카메라로 촬영되었지만 유독 눈에 띄는 장면이 두 번 있다.

기태가 중화요릿집에서 한바탕 언성을 높인 후 식당 밖으로 나설 때, 그리고 오씨 아저씨(이한위)가 집에 가야 한다며 급하게 짐을 꾸릴 때. 두 번만큼은 인물을 비추는 카메라가 핸드헬드 방식이다.

인물의 동요하는 심정을 표현하고 불길한 사건 발생을 암시하는 카메라의 의도적 사용은 학습의 결과물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에 이물감으로 심으면서까지 굳이 핸드헬드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진=DB)
▲(사진=DB)

치밀한 계산과 착실한 배움의 실천은 삶의 숨결까지 챙기지 못한다. 정갈한 편집과 촬영은 잉여 쇼트를 덜어내어 관객의 시간을 아껴주었지만, 빠듯한 전개 속행은 관객이 주인공에게 동화될 여유마저 내주지 않는다. 〈국도극장〉은 쇼트와 서사, 배우들의 호연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갈무리된 영화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정석에 가까운 플롯과 편집은 기태의 삶을 우리(관객)의 이야기가 아닌 ‘영화 속 이야기’로 한정 짓고 만다. 〈국도극장〉과 관객 사이 장애물은 다름 아닌 영화가 좇는 정석적인 형식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국도극장〉의 위로는 보편타당할지라도 보는 이의 심연까지 가닿지 못한다.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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