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칼럼] 꼰대들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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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칼럼] 꼰대들에게 ‘고함’
  • 김수현
  • 승인 2020.06.22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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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 또한 ‘고통’, 참고 견뎌내기 아닌 병원과 약 필요

최근 MBC에서 새롭게 시작된 수목 저녁 드라마 ‘꼰대 인턴’은 몇 년 전부터 언급되고 있는 ‘꼰대’ 문화를 지상파로 끌고 왔다. 드라마는 회사의 꼰대 부장이 시니어 인턴이 되어 돌아오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전형적인 꼰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유형으로는 시한폭탄 분노형 상사, 갑질형 상사 등이 있다. 인터넷 용어로 사용되던 ‘꼰대’라는 표현은 이제 지상파 드라마의 소재로도 등장하면서 공공연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꼰대’의 의미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보다 명확한 의미 파악을 위해 네이버 지식백과의 정의를 살펴보자면, 꼰대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로 최근에는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흔히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라는 표현은 주로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불평할 때, 이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기성세대들의 말버릇에서 파생된 말이다.

▲신조어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 (사진=삼성생명 유튜브 캡처)
▲신조어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 (사진=삼성생명 유튜브 캡처)

물론 꼰대의 기준은 노인이 아니다. 기성세대 중에서도 현세대의 고민과 불평에 동의하고 심지어는 부조리에 함께 맞서는 이들도 많다. 반면 현세대 가운데에서도 고작 몇 년의 세월을 앞세워 몇 살 어린 사람들 앞에서 으스대는 이들도 있다. 그들을 두고 우리는 ‘젊은 꼰대’라 칭한다.

한국인들은 말 그대로 꼰대들에게 고통받고 있다. 동아일보의 뉴스 기사에 따르면 2020명의 청년에게 설문한 결과 청년 2명 중 1명이 꼰대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수직적인 관계가 잘 드러나는 직장에서는 꼰대 문화가 더욱 활개 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업무 내용과는 관계없는 부하직원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행위나 회식 자리에서 음주 강요, 도를 넘는 옷차림 지적이 그에 해당한다.

이러한 문화가 점차 심화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는 회식 자체를 하지 않는 회사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는 ‘직장 상사’라는 타이틀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사연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직장 상사 (사진=DB)
▲직장 상사 (사진=DB)

그렇다면 꼰대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분명 그들이 돌잡이에서부터 갑질을 잡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옹알이로 잔소리를 거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꼰대를 만들어내는 요인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이 존재한다. 기성세대의 경우 지금보다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이 뚜렷한 시대에서 나고 자라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꼰대 문화는 예전부터 존재해왔던 익숙하고 당연한 문화일 수 있다.

젊은 층에서도 보수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자랐거나, 잘못된 조직 문화에 편입되어 권위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그 외에도, 우월의식에 젖어있다거나 세대 간 의사소통을 기피하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꼰대의 떡잎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꼰대’는 우리 사회에만 있는 위인이 아니다. 그들은 전 세계에 상주하고 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boomer’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boomer’는 ‘baby boomer’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을 일컫는 말로, 젊은 세대들은 그들에 대항하여 ‘Ok, boomer(네, 다음 꼰대~)’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단어가 있다. ‘이라오마이라오(倚老賣老)’는 중국어로 나이로 누른다는 뜻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주로 특정 연령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로가이(老害)’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노인 공해의 줄임말로써 불평 많고 탈도 많은 기성세대를 향한 현세대의 원색적인 표현이다. 결국, 꼰대 문화는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범지구적 보편 문화인 것이다.

한 때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참고 견뎌내기식의 태도를 높이 사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이 아파 본 청춘들은 성장통도 고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청춘은 병명이 아니었고, 아픈 청춘들에게는 병원과 약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되었다.

그들의 깨달음을 반영하듯, 각종 미디어에서는 일종의 ‘사이다 발언’으로 ‘아프면 환자다’식의 현실적인 문구를 비추고 있으며, 문학계에서도 젊은 세대를 위한 힐링 에세이가 대유행하고 있다.

방송인 유병재가 SNL코리아 ‘인턴전쟁’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간접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방송인 유병재가 SNL코리아 ‘인턴전쟁’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간접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청년들은 아직도 아프다. 취업난이 극심해도 명절날의 잔소리는 줄지 않고, 엄마 친구의 아들들은 여전히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 겨우 들어간 직장에서는 적은 연봉을 쥐여주며 열정페이를 권한다. 사회가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연대하기 시작했다. 함께 모여 고통을 공유하고, 작은 목소리를 더하고 더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의 단어로 뭉쳐 전해진다.

그렇게 꼰대들에게 고한다.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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